이자장사와 돈잔치 비난에 은행권이 수천억원대 희망퇴직 비용을 놓고 눈치보기가 한창이다.
특히 매년 11월부터 12월중순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왔던 우리은행의 경우, 현재까지 사측이 희망퇴직 조건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앞서 농협은행이 선제적으로 희망퇴직금 규모를 대폭 줄이면서 정부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내부에서도 희망퇴직금 규모를 축소하라는 정부의 기류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 출신인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그간 정부와 상생금융으로 발맞춰왔던 만큼, 우리은행의 희망퇴직 조건도 예년과는 적은 수준으로 조율할 가능성이 높아보여서다.
다만, 농협은행처럼 희망퇴직금 조건을 악화시키게 된다면 고연령·고연봉자를 조기 은퇴시켜서 판매관리비를 줄이겠다는 당초 희망퇴직제도의 목표가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희망퇴직금 규모가 줄어든다면 신청자가 대폭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이 앞으로 어떤 희망퇴직 조건을 내걸고 노사간 협상에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달 중 희망퇴직 신청 접수를 받을 예정이다. 희망퇴직 조건은 우리은행 인사부가 먼저 노동조합 측에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현재까지 사측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은행권에선 11월 중순부터 희망퇴직을 받은 후, 대상자를 선정해 12월에 내보내는 일정대로 진행돼 왔다. 12월 인사 시즌을 앞두고 희망퇴직 대상자와 승진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일정이 예년보다 늦어지고 있다. 지난달 농협은행이 희망퇴직금 수준을 기존 30개월에서 20개월로 대폭 줄여서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1인당 3억2712억원의 희망퇴직금을 지급했는데 올해는 2억원 수준의 희망퇴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1인당 평균 3억원의 희망퇴직금을 지급했던 은행들은 고민에 빠졌다. 기존대로 희망퇴직금을 주자니 정부의 상생금융 압박에 돈잔치 논란 등 비난 여론이 형성되서다. 그렇다고 농협은행처럼 희망퇴직금을 줄이자니, 희망퇴직 신청자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희망퇴직의 취지는 은행의 고연령·고임금 인력구조를 효율화하자는 것인데, 퇴직금이 줄어들게 되면 희망퇴직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에서 가장 고민하고 있는 대상자는 1969년생이다. 이미 임금피크제에 돌입한 1968년생에는 24개월치를 지급하되, 내년부터 임피제에 돌입하게 될 1969년생들이 희망퇴직을 신청해야 고임금·고연령 인력구조가 개선된다. 만약 이들이 희망퇴직 대신 은행에 남게 된다면, 오히려 인건비 등 판관비가 더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우리은행도 인사적체가 상당한 곳이다. 현재 본부장급과 지점장급이 과거 합병 세대 이전인 한일·상업·평화은행 등 출신인데 인사적체 등 문제로 한 지점당 2~3명의 지점장을 두고 있는 곳들이 있다. 본부장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다가 합병으로 많은 인력들이 몰려있어서다.
우리은행의 희망퇴직금 지급액을 보면 2020년에는 326명이 나갔는데 1인당 평균 35개월치(4억540만원)를 받고 나갔다. 2021년에는 487명이 평균 3억6436만원을, 2022년에는 415명이 평균 3억7236억원의 퇴직금을 받고 은행을 떠났다.
금융권 관계자는 "희망퇴직 신청 조건 조율 문제로 은행들의 고민이 커질 수 밖에 없다"며 "희망퇴직 일정이 늦어지면서 연말 인사 일정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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